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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조선 초기 격변의 혼란 속에서도 ‘백성을 위한 통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민생 구휼·인재 등용·문화 교육·의료 복지 등 다방면에서 포용적 사회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정책은 특정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신분·지역·성별을 넘어 모두가 삶의 기본 권리를 누리고 능력을 펼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민생 중심 거버넌스와 사회 통합 모델로서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1. 민생 구휼과 재난 대비: 위기 속 모두를 품은 복지 체계
세종대왕은 대기근·홍수·전염병 등 자연재해가 잇따르던 시기에 백성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선제적 정책을 펼쳤습니다. 우선 정부 비축 쌀(상비미)을 전국 고을에 나누어 저장소를 마련하고, 흉년이나 가뭄 발생 시 굶주림이 확산되기 전에 신속히 배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관료뿐 아니라 촌장·향리·사경(寺卿) 등 지역 책임자를 동원해 긴급 구호 현황을 매일 보고하게 하였고, 중앙에서는 기록을 바탕으로 추가 지원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또한 세종은 전염병 확산 방지와 치료를 위해 《향약집성방》 편찬을 지원, 의약 처방과 위생 지침을 전국 민간에 보급했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한 지역에는 의사·침구 의관을 파견해 무료 진료를 실시하고, 약재를 무상 공급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이러한 민생 구휼 정책은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외 지역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공공 안전망’의 원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세종은 수확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가난한 농민에 대해서는 세금·공납·부역을 감면하거나 유예해 경제적 부담을 경감했습니다. 대신 상비미·의약품·씨앗 배급, 가축 구제 등을 통해 빠른 자립을 도왔으며, 사후에는 수해·흉년 현황을 기록해 동일 재난 발생 시 더 체계적이고 신속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노하우를 축적했습니다.
세종대왕의 민생 복지 체계는 ‘위기 시 모두가 보호받는다’는 포용적 원칙 위에 세워졌습니다. 현대 복지국가의 재난 대응 매뉴얼과 긴급 구호 제도는 이와 같은 선제적 비축·투명한 보고·우선 지원 원칙을 계승하여, 재난 속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 배제되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인재 등용과 신분제 완화: 기회 균등을 향한 과거 시험 개혁
세종대왕은 유교적 통치 이념을 존중하면서도 신분이 우수 인재 등용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과거 제도를 개혁했습니다. 집현전 학자·기율 관료 중심의 ‘성균과(成均科)’ 외에도, 문반·무반·잡과 등 다양한 과목을 신설해 일반 양반 가문은 물론 중·하층 민간 인재도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특히 ‘음서(蔭敍)’ 의존도를 낮추고 실력 평가를 중시함으로써, 능력 있는 중인·서리·의녀·광대·여성 어의(御醫) 자제 등도 과거에 응시해 합격하면 관직에 등용될 수 있었습니다.
세종은 또한 중·소지방 수령 선발 과정을 개선해 추천·시험·실무 평가를 병행했습니다. 지역 향교생·서당생을 대상으로 한 소과(小科) 시험을 확대해 지방 관아에 실력을 검증받은 인재가 진출하도록 유도했으며, 이들이 중앙에서 시행되는 대과(大科)에 응시해 추가 승진 기회를 획득하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 능력 있는 관료가 보은·연줄보다 실력으로 발탁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습니다.
이 같은 인재 등용 정책은 지방·중앙 정부 간 소통과 협업을 촉진해, 각 지역의 민생 현안이 중앙 정책에 반영되는 포용 행정을 구현했습니다. 세종은 국정 운영 전 분야에서 유능한 인재를 대거 기용해 교육·농사·방역·법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이는 신분·지역 불문 능력 중심 선발이 사회 통합과 국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 전형적 모델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기회의 평등’과 ‘능력 중심 등용’은 양성평등·사회 이동성 제고를 위한 핵심 과제입니다. 공정채용·블라인드 채용·학력·성별·지역 제한 폐지는 세종의 과거 시험 개혁 정신을 계승하는 실천적 방안이며, 이는 사회 각 계층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케 해 함께 성장하는 포용 국가로 나아가는 토대가 됩니다.
3. 언어·문화 보급과 교육 제도: 한글로 여민동락(與民同樂)하는 사회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를 통해 모든 계층이 문자와 지식에 접근하도록 문해 혁명을 주도했습니다. 집현전 학자뿐 아니라 향교·서당을 통해 전국 백성에게 한글 교육을 권장하고, 학습 교재로 《용비어천가》·《월인천강지곡》·《급유록》 등을 편찬해 다양한 장르의 글을 쉽게 읽고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로써 양반뿐 아니라 평민·여성·천민도 생활·의례·역사 지식에 참여하고 기록하는 포용적 지식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또한 세종은 향약(鄕約) 제도를 활용해 지방 향촌 사회에 자율 교육·자치 규약을 보급했습니다. 향약은 마을 단위 자치 규범이자 교육·덕치(德治) 실천의 장이었으며, 서당·서원에서 한글·사서삼경·예악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했습니다. 특히 의료·세금·방역 지침 등 현실적 지식을 포함한 생활 문해 교육은 사회 전체의 복원력과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장치였습니다.
세종의 이 같은 교육·문화 보급 정책은 ‘중앙에서 하향하는 일방적 지식 전달’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스스로 지식을 공유·전달하는 풀뿌리 학습망’을 구축한 점에서 주목됩니다. 이는 현대의 평생교육·커뮤니티 학습 모델과 상통하며, 디지털 시대에는 온라인 플랫폼·모바일 앱을 활용해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배움에 참여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교육 생태계’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포용적 사회 구축 전략은 “항상 백성과 함께 기뻐한다(與民同樂)”는 정신으로 요약됩니다. 민생 구휼·인재 등용·교육 보급을 통해 신분·성별·지역을 넘어 모두가 정책 결정과 문화 창조의 주체가 되도록 한 그의 통치 철학은, 오늘날 모두가 배움과 기회에 평등하게 접근하는 포용적 국가를 만드는 데 여전히 강력한 교훈과 영감을 제공합니다.